2009년 10월 13일
이별한 날
어제 헤어지고 들어왔다. 넋은 반쯤 나가고 다 큰 아가씨가 길바닥에서 눈물 펑펑 쏟으면서..
담담하게 자기 미래에 대한 얘기와 자기네 집안 사정을 얘기하면서 나와 더 이상 정들면 안된다던 그 애의 얘길 들으니까 '현실'이라는 벽이 눈 앞까지 다가왔다. 솔직히 그 애의 집안 사정 모르고 만난 건 아니니까. 아버지 아프시고 동생은 군대가고 집 안에서 고정적으로 수입이 있는 사람이 없는. 게다가 그 애는 군대 2년 다녀온 덕분에 아직까지 학생신분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라서.
더 이상 만나면 결혼할 것 같아서 못 만나겠다고, 가볍게 연애만 하고 결혼은 생각 않는 그런 만남 못한다고.
그리고 자기네 집안 사정 상 계속 함께한다고 해도 내가 무지 힘들어 질 거라고.
결혼 등등.. 나와의 미래가,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금의 자신에겐 너무 멀고 사치스러운 얘기라 부담된다고.
그냥 누군가를 만나서 그 사람에게 집중하는 것이 점점 현실적인 벽에 부딪히고 있어서 나에게 잘할 자신이 없다고.
3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만났다가 헤어지는 걸 두번이나 반복했던만큼.. 더 이상 만나고 더 정들면 자신이 못 헤어지겠다면서..
나는 하고 싶은 건 기필코 하는 성격이고 좋아하는 건 절대 내 손에서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타입이라, 사랑하지만 현실 때문에 헤어진다는 말 죄다 변명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애가 저런 얘기들을 할 때도, 마음 한 구석에선 그걸 다 감수할 만큼 날 사랑하지는 않기 때문이라고 받아들였다.
사랑하고 좋아하던 마음이 예전같지 않으니까 그렇겠지, 라고.
그런데 내가 지난 데이트 때 먹고 싶다고 말했던 찜닭 집에 데려가서, 제대로 못 먹고 있는 날 보고 고기도 다 발라내서 작게 찢어주고, 감자도 쪼개서 놓아주고, 사리도 건져서 앞접시에 올려주는 그 애를 보니까 눈물이 나왔다. 컵에다가 물도 따라주고..그래도 제대로 못먹고 정신줄 놓고 있는 내 손을 잡아끌고 우리 집이 있는 역까지 데려다 주었다.
개찰구 앞에서 내 손을 천천히 놓는 그 애를 보니까 마음이 아파져서, 그리고 이게 마지막으로 보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개찰구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그래도 헤어지지 말자고 졸라봤다. 천장을 자꾸 쳐다보던 그 애가 몇 번이나 화장실에 갔다오겠다고 했다.
눈물 참느라고 그러는 거 다 보여.
내일도, 그러니까 오늘도 일해야 된댔는데. 차 끊기기 전까진 내려가야 하는데, 내가 못 가고 있으니까 그 애도 못 가고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얼른 집에 들어가보라고, 집에서 걱정한다고 날 달래던 그 애가 자기가 지하철 타러 내려가야만 집에 가겠냐고 물었다. 자꾸만 눈 앞이 흐릿해지고 사람들은 쳐다보고..어떻게 해야할 줄 몰라 그냥 고개를 끄덕였더니 그 애가 눈물을 또 닦아주고 날 바라보면서 승강장으로 가는 계단으로 내려갔다. 갔어, 정말 갔어..
마냥 그 애가 사라진 자리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가 세 번이나 다시 올라왔다가 내려갔다. 날 다시 보려고..
이럴 거면 왜 헤어지자고 했냐고 왜 맘을 안 바꾸냐고 문자로 원망해봤다. 만나면서 두번 헤어진 경험이 있기 때문에 사귀는 동안 내가 좀 불안해 했었는데, 자긴 어디 안가니까 걱정말라고 나만 생각한다고 안심시키더니 이렇게 먼저 헤어지자고 하냐...라면서 원망했다.
그냥 자기가 다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 겁쟁이라서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사랑 안해서 헤어지자고 한 거고 다른 건 다 핑계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까지 진심이 느껴져서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새벽까지 메신저에서 길게 얘기를 나눴다.
나랑 헤어진 걸 꼭 후회하라고, 다른 사람을 새로 만나게 되더라도 날 떠올리고, 우리가 만난 시간보다 더 오랫동안 나를 그리워하라고...
그게 내가 바라는 거라고 말하고 안녕을 고했다.
그 애는 정말 후회할 거라고, 나중에는 자기가 나에게 울고불고 매달릴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래도 자기 자신이 어느정도 자리잡기 전까진 누구에게도 신경쓰기 힘들다고 했다.
사랑해줘서 항상 고마웠다고 했다.
어제 일이다. 이렇게 구구절절하게 쓰기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답답하고 울컥해서 못 견딜 것 같았다.
그런데 쓰다보니까 또 눈물이 나오려고 하고 힘들다...손에 잡히는 것도 없고.
이번에 헤어진 건 지난번과 다르게 너무도 실감나서, 내 어딘가가 텅 빈 것 같다.
정신차리고 할 일 해야되는데...
# by | 2009/10/13 18:47 | 트랙백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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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많이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누나 힘내...